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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월의 신전 / 주홍

     

    • 입력날짜 : 2021. 05.13. 19:53
    주홍 치유예술가 샌드애니메이션아티스트
    인간(人間)의 ‘간間’자는 사이를 뜻한다. 인간세상은 관계로 창조되고. 인간의 인식프레임은 일체를 펼치고 규정한다. 신성한 시선은 덩어리라는 물질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물체와 물체의 사이, 존재와 존재 사이, 텅 비었다고 인식하는 그것을 보는 것이요, 예술은 그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하며, 몸의 움직임과 감각을 통해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한다. 신들린 듯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다. 예술가는 ‘사이’에서 작업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을 ‘사이’에 있는 자, 샤먼이 되어 거닐었다.

    제13회 광주비엔날레 주제는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이었다. 작년 광주5·18 40주년을 맞이하며 전시를 준비했으나, 코로나19로 미뤄진 것이다. 본전시장은 한마디로 신전이었다. 비엔날레 전시를 관람하는 것은 지금은 사라져버린 오래된 믿음의 영역에서 치유의 세계를 찾아가는 걸음 같은 것이었다. 아픈 역사를 돌아보게 하고, 미신으로 치부하던 소수자들의 세계와 작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그 아픔에 광주비엔날레가 공감하고 있었다. 전시장은 한 마디로 다양한 옷을 입은 샤머니즘의 신전이었다. 그 신전에 걸린 한 점의 작품 앞에서 걸어가던 발길이 멈췄다.

    일제강점기와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민족과 동지들을 외세에 팔아서 부자가 되고, 독립군을 앞장서서 토벌하고 군국주의 전쟁을 찬양하는 글을 쓰고, 일제 침략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신문을 만들고 강자에게 무릎 꿇고 약자들을 짓밟아 권력을 얻고 국가보안법을 만들어 지식인들을 가두고 고문하고 죽인 권력자들… 92명. 법으로 처벌하지 못한 대한민국 근 현대사 속 대표적인 인물들이 오랏줄에 묶여 영혼까지 봉인된 불화형식의 작품을 보았다. 미화된 역사만을 그림에 담는 기록화가 아니라 부끄러운 역사를 직면하게 하는 기록화요, 그림으로라도 역사의 죄인임을 명백히 하여 억울한 영혼들의 한을 풀어주는 그림이었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국가보안법으로 체포돼 고문을 받았고 아직도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며 살아가는 이상호 화백이다. ‘일제를 빛낸 사람들’이라는 제목이 그림 속 주인공들을 말해주고 있다.

    필자는 밑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그의 화실을 찾아갔다. 화가는 화실 바닥 전체에 배접된 한지를 깔고 무릎을 꿇고 5m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담담하게 그들의 잔인한 행적을 한 명 한 명 이름을 거론하며 알려줬다. “제목이 일제를 빛낸 사람들이여. 그리다보니까 자리가 부족하네.” 화실바닥이 꽉 차게 큰 화폭에도 다 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광경은 마치 부처나 나한상을 제작하듯 경건한 느낌이 들었고 제작 과정 자체가 국가폭력을 겪은 이상호 화백 자기 자신을 치유하는 과정이었다. 그림 씻김굿을 하고 있었다. 1년이 걸려서 완성된 작품이 광주비엔날레에 걸린 것이다. 그 그림 앞에서 해가 떠오르듯 새로운 역사가 떠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옛 국군통합병원 터에서는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볼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있는 것’이라는 주제의 전시였다. 화정동 언덕길을 올라가면 숲으로 우거져 초록으로 덮인 폐허의 건물이 나타난다. 나는 작년부터 이곳에서 묵념의 의식을 행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전시만 보고 나오기엔 나를 붙잡는 그 뭔가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 느낌은 장소가 주는 특별함이다. 대부분 무덤에서 느껴지는 기운이니 뭐라고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궁금했다.

    무고한 시민들을 잡아 가두고 고문하던 시절, 고문으로 부상을 당하면 이 병원으로 데려왔고, 1980년 5월 군부가 광주시민들을 학살하고 암매장한 뒤 증거를 없애기 위해 시신들을 쓰레기차에 싣고 어디론가 갔다는 증언들이 있다. 그리고 이 병원의 보일러실을 개조해서 화장을 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병원 굴뚝에서는 밤낮없이 연기가 피어올랐고 화정동 일대는 빨래를 널기 힘들 정도로 흰 재가 날렸다고 한다. 광주민주항쟁의 실종자가 많은 이유다. 시신은 없지만 그곳은 묘지였다. 비가 오는 날, 옛 국군통합병원 터를 찾았다. 붕대 몇 개를 챙겨갔다. 우연히 입구에서 배우 이당금씨를 만났다. 필자는 그녀와 함께 폐허의 건물로 들어가 그녀의 얼굴 전체를 붕대로 감고 서로 아무도 모르는 죽음에 대한 묵념의식을 퍼포먼스로 함께했다. 그리고 우리는 손을 잡고 삶과 죽음의 사이를 걸어 나왔다. 그 날 이당금배우를 옛 국군통합병원 폐허의 터에서 만난 것은 우연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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