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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의 관풍(觀風)> 농어촌 만능해결사 · 풀뿌리 자치의 주역인 ‘里長’, 기능과 복지 격상해야

    • 김성 소장 ysk@dailysportshankook.com
    • 승인 2021.05.12 17:39

    사회생활을 하면서 한 번 이상은 꼭 만나게 되는 사람이 이장(里長)이나 통장(統長)이다. 국민이 행정을 접하는 최일선 조직이다. 그런데 ‘통’(統) 관련 규정은 없었다. 행정안전부는 ‘지방자치법 일부개정안’에 그동안 없었던 규정이 마련됨에 따라 지방자치법 시행령도 개정할 방침이다. 특히 ‘이장’에 대해서는 근거가 명시되어 있긴 했었으나 그 역할이 더욱 커졌으므로 이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개선을 해야 한다고 본다. 농어촌에서 뛰고 있는 ‘이장’들은 도시의 ‘통장’과 달리 주민들에게 육체적 정신적 영향력이 훨씬 큰데다 ‘지방의 소멸’을 방어하는 ‘국토지킴이’이기 때문이다.

    ‘봉동이장’ ‘전원일기 이장’ 등으로 긍정적 인상 심어줘

     

    ‘이장’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누구일까? 우선 ‘봉동이장’ 최강희 감독을 들 수 있다. 최감독은 그저 평범했던 전북 현대축구팀을 2005년부터 2019년까지 맡으면서 K리그에서 우승 6번, 준우승 2번을 가져왔던 인물로 이 축구팀의 연습장이 전북 봉동에 있다고 하여 ‘봉동이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또 ‘닥공’(닥치고 공격)이라는 화끈한 공격축구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오래되긴 했지만 최불암도 TV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이장 역으로, 2006년에는 차승원이 이장 역할을 한 영화 ‘군수와 이장'도 개봉됐었다. 세 사람은 실제로 이장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장’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을 남기는데 크게 기여했다.

    김두관, 현직 교수, 1급 공무원출신, 59년 장수이장, 31세 3선 여성이장 등 ‘이색이장’ 많아

    실제로 이장을 했던 유명인도 많다. 김두관 국회의원이 대표적이다. 이장 군수 도지사를 거쳐 행정안전부 장관과 국회의원까지 했기 때문이다. 2000년 총선에서는 이장과 제주도의회 의장을 했던 장정언씨가 5선의 양정규 의원을 꺽고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2005년에는 마을 이장, 새마을 지도자,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한농련) 회장, 국회의원을 했던 박흥수씨가 ‘현장 농민운동가’ 출신으로는 최초로 농림부 장관이 돼 화제가 됐다. 이밖에 기초의원이나 광역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장출신들이 점차 늘어나 풀뿌리 민주주의와 농정개혁의 주역으로 성장해 가고 있다.

    이색 이장으로도 많은 사람이 있다. 2001년 익산시에서는 1943년에 이장으로 추대된 할아버지가 59년간 장수이장을 해 주민들이 경로당에 송덕비를 세워주었고, 2006년 서산시에서는 3대가 95년간 한 마을 이장으로 헌신해 온 공으로 공적비를 세웠다. 횡성군 81세 할아버지는 44년간 이장을 하면서 버스노선 유치, 재해복구사업에 앞장선 공으로 2018년 국민훈장을 받기도 했다. 특이하게 고려대 강수돌 교수가 이장을 3년 했었고, 교장이나 이사관 등 고위공무원이 정년퇴직한 후 고향에 돌아와 이장을 맡기도 했다. 1999년에는 69세 할머니가 막내아들격인 남자 후보와 주민투표에서 3선 이장으로 당선돼 화제가 되었고,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여 성공한 20대 여성이 주민들의 요구로 최연소 이장을 맡았다가 2017년 31세에 3선 이장이 되고 농식품부의 ‘6차산업인’으로 뽑히기도 했다. 농어촌에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면서 2008년 함안군에서는 재중동포 여성(44세)이 여성이장이 되었고, 2009년 청원군에서는 필리핀 출신 여성들이 이장, 새마을부녀회장, 반장을 함께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각종 행정처리·집수리부터 ‘고독사지킴이’까지 업무 셀 수 없이 많아

    우리나라에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에 이장 3만 7,721명, 통장 6만 2,119명이 활동하고 있다. 20세기 전반기까지만 해도 이장은 마을을 장악하고 있는 몇몇 집안의 원로들이 지정한 사람이 맡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고 복잡다단해 지면서 주민투표 방식으로 선출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으며 그 업무도 점차 가중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주민등록 업무 보조 △지역의료보험조합의 운영 지원 △적십자회비 모금 △각종고지서 전달 △선거인 명부 열람 △자율방범대 운영 △지역여론 수렴 △가축 통계조사 업무(통장과 같음)에다 이장은 여기에 더해 △사망증명 확인 △미등기 토지 소유자 확인 △영농회장 겸직 △농어업 기자재 신청·배정 △신원조사 등 경찰업무까지 지원하고 있다. 공문서만 해도 1년치가 사과박스 2개를 넘을 지경이다. 최근에는 코로나19때문에 마스크 배부, 재난지원금 신청 안내, 75세 이상 백신 접종 예약 및 인솔까지 늘어났다. 의무조항은 아니지만 마을의 대표적 활동가이다 보니 △생태관광 전문가 역할 △마을신문 발행인·마을방송 PD 역할도 해야 한다.

    필자와 가까이 지내는 이장의 하루를 보더라도 쏟아지는 공문서 처리 외에도 나이든 주민이 아프다고 하면 밤낮없이 찾아가 봐야 하고, 전기·수도와 보일러를 수리해 주고, 원주민과 귀농·귀촌인 갈등의 조정자에다 읍·면사무소나 군청으로부터 소규모 마을사업 예산을 따와야 하는 만능 해결사 역할을 하고 있다.

    넘치는 업무에 비해 월 수당은 겨우 40만원 “무보수 봉사나 다름없어”

    이에 반해 이장이 받는 처우는 형편없다. 원래 무보수 명예직으로 과거에는 이장세(里長稅)라고 하여 1년에 가구당 쌀 한 말을 거두어주는 것이 보수의 전부였다. 그러다가 1963년 월 5백원이 기본 수당으로 처음 지급됐고, 1986년 5만원, 1997년 10만원, 2004년 20만원, 14년만인 2020년부터 30만원이 됐다. 또 농협에서 영농회장 운영비조로 월 10만원, 상여금 200%(60만원) 회의비 월 2만원(1회 1만원) 등으로 연 500만원의 내외의 수당을 받고 있다. 자녀 장학금과 상해보험 가입 등이 별도 지원되고 있다. 반면 마을 주민들이 거두어주던 이장세는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마을의 대소사에 모두 간여하고, 이로 인한 경조사비의 지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주민들의 민원을 해결해야 하는 업무, 마을을 찾아오는 손님이나 높은 ‘나리’들을 접대해야 하는 일, 이장 부인의 어쩔 수 없는 무보수 내조활동 등을 감안한다면 봉사를 하는 거나 다름없다.

    또 부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았다. 선거철이 되면 이장직을 사퇴하고 우르르 선거판에 뛰어들어 행정에 차질을 빚는가 하면 이장직을 그대로 유지한 채 선거운동을 해 형사처벌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08년 쌀직불금 파동, 2010년 4대강사업으로 보상금 지급때는 이장들이 영농확인서를 부정으로 발급해 말썽이 됐다. 2018년 한 섬에서는 이장이 새로 이주한 주민들에게 “섬에 살려면 마을발전기금을 내라”고 강요해 벌금형을 받았다. 또 상급행정기관의 ‘인구늘리기’ 강요로 생명보험 고객 명단을 당사자 동의없이 이전하여 입건되기도 했다.

    정부도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이장제도의 폐지를 검토했으나 부지사회의를 비롯한 행정기관들이 한 목소리로 “마을의 구심점이 이·통장이므로 존속해야 한다”고 밝혀 구역을 조정하는 선에 그쳤다.

    전국 자연부락 50%이상에서 직선으로 이장 선출, 새로운 시각으로 ‘역할’ 설정해야

    오늘날 이장은 전반적으로 젊은 층의 이농현상으로 인력난을 겪고 있다. 또 보수가 턱없이 낮아 기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변화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전국 50%이상의 마을에서 주민 직선으로 이장이 선출되고 있는 것이다. 하여 이장은 읍·면과 자연부락 사이의 단순한 행정 전달자가 아니라 자연부락의 대표자이자 쌍방의 의사전달자가 되고 있다. 또 읍·면 사업의 대리 집행자이면서 감독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이장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꿔 새로운 시각으로 이장의 역할을 설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첫째, 현재의 지방자치법 시행령과 자치단체의 조례를 개정해야 한다. 현재의 지방자치법 시행령 81조(이장의 임명)에 의하면 ‘이장은 주민의 신망이 두터운 자 중에서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규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읍장·면장이 임명’하도록 되어있고, 가평군 조례는 ‘이장의 임명은 해당 ‘리’의 주민총회에서 선출된 사람 중에서 제 2조에서 정한 자격(해당 주민의 신망이 두텁고, 국가관이 투철하며,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능력과 열의를 가진 사람, 봉사정신이 투철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 2년 이상 주민등록이 되어 있는 사람)을 읍·면장이 임명한다’고 되어있다. 그런데 이 시행령이나 조례는 정부나 자치단체의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은 임명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으로도 오해할 수 있다. 따라서 민주적인 절차로 선출된 사람이 금치산자나 형을 마치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면 임명하도록 개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방자치는 풀뿌리 민주주의다. 중앙정부가 정한 법률에 의해 지방자치가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밑바닥부터 자치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둘째, 이장의 역할, 또는 임무를 분명히 설정하고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이장이 직선제로 선출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할 경우, 같은 ‘선출직’인 군수나 군의원과 권한과 대우면에서 지나치게 차이가 난다. 이장 임무가 비록 작은 자연부락을 담당하는 업무라곤 하지만 읍·면의 업무를 주민들에게 두루 연결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지방의 소멸 위기를 앞두고 이장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졌다. 따라서 여기에 맞게 법적 권한과 복지를 제공하는 ‘준공무원’이 돼야 한다. 또 이장에게 책임감을 더 심어주기 위해 한 단계 높여 군수·시장이 임명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장 자리를 외면해왔던 유능한 젊은이들의 도전이 늘어날 것이고, 그 젊은이들의 아이디어와 네트워크로 마을은 더욱 활력을 얻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 법률의 기초 행정단위인 읍·면장도 직선으로 선출하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셋째, 이장의 복지대책을 현실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 이장이 담당해야 할 인구는 수십명에서 수백~1천여명에 이르기까지 가지가지이다. 담당 면적도 각기 다르다. 어떤 이장은 넓은 담당구역을 자동차로 둘러보느라 연료비가 부족할 형편이고, 어떤 이장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몇 십명의 주민을 돌보기만 하면 되기도 한다. 현행은 중·고등학교 자녀학자금을 제공하게 되어 있지만 의무교육제가 눈앞에 있어 의미가 약화됐다. 대학 학자금을 지원한다고 해도 노령 이장이 많아 이마저 혜택을 받지 못한다. 따라서 이러한 특별한 사정들을 감안하여 이장에 대한 복지를 보다 깊게 연구해야 한다.

    자식·경찰·공무원도 못하는 일 도맡아 … ‘준공무원화’로 역량과 책임감 높여야

    오늘도 농어촌의 이장들은 65세 이상 노약자들을 인솔하고 코로나19 백신 접종장소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아들딸들도 하지 못한 일을 하고 있다. 자신의 농사보다 우선하여 마을에 배급된 유기질비료를 주민들의 경작지로 옮기는 일이나 농작물 절도를 막기 위해 밤을 세워 지키는 사람도 이장이다. 읍·면사무소 직원이나 지서·파출소 경찰관도 하지 못하는 일을 현장에서 담당하고 있는 존재이다. 그들에게 지급되는 수당이 겨우 월 40만원이라니 너무한 것 아닌가.

    우리나라의 2021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은 8,720원으로 월급으로 환산하면 182만 2,480원(주휴시간 포함 월 209시간 근로기준)이다. 이장이 명예직이므로 수당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최저임금 노동자와 비교해 업무량이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 않다. 마을 주민에게는 읍·면사무소 직원 10명보다 더 소중한 존재이다. 하여 그들에게 행정기관의 운영비를 쪼개서라도 최저임금 수준의 수당을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김 성 (지역활성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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