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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의 관풍(觀風)> ‘기생충’이 보여준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

    • 김성 ysk7474@daum.net
    • 승인 2020.02.20 12:59

    코로나19로 전국이 한창 움츠러들었던 상황에서 지난 9일(현지 시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국제장편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하면서 모처럼 밝은 분위기로 바꿔졌다. 아카데미 92년 역사상 처음으로 작품상은 물론 외국(한국)이 한꺼번에 4개 부문에서 수상한 것이다. 
    세계 영화시장의 흥행을 좌지우지하는 미국 영화계가 자본주의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그린 ‘기생충’에 상을 주었다는 것은 아카데미상이 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앞으로 영화라는 종합예술이 개혁의 한 참여자로서 불평등과 모순을 그려내는 일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봉준호는 단지 수상만을 목적으로 기생충을 제작했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하여 수상을 계기로 드러난 불평등과 모순이 어떻게 우리사회에 존재하고, 어떤 방향으로 해결해 나아갈 것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첫째, 갈등관계를 선명히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빈부갈등과 계층갈등을 주로 보여주고 있는데 갈등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 더 큰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더 큰 갈등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수도권의 부유층은 ‘통유리’(영화에서 특수제작한 가로 8.4m, 세로 3.1m의 대형 통유리창)를 통해 잘 손질된 잔디밭과 약탈자(부유층)의 전리품(戰利品)인 인디안 천막만 보면서 세상을 읽고 있다. 빈곤층은 그 부유층에 점차 하나 둘씩 빌붙어 살게 된다. 부유층이 왜곡된 분배로(빈곤층이 접근할 수 없는 방법) 부를 축적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 역시 엄청나게 쏟아부은 사회간접자본 덕분에 지방민을 유인하여 집값을 유지하고 있고, 지방은 ‘수도권 중심주의적 정부’가 베푸는 척 하는 ‘당의정 정치’에 의존하고 있다. 그래 어떻게 보면 양자가 서로 기생관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은 지방을 ‘냄새나는 존재’로 업신여기고 비수도권은 수도권을 바벨탑으로 우러러보는 주종관계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런 관계는 결국 모든 것을 빼앗긴 존재(인디언 모자를 쓴 비수도권민)에 의해 비극적인 결론을 맞이하게 된다. 현실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둘째, 상위계층으로의 진입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는 문제이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면서도 집의 형태를 가지고 최고부유층, 부유층, 빈곤층, 극빈곤층으로 세분화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최고부유층이 사는 저택과 빈곤층이 사는 반지하집, 그리고 지하실에서 햇빛을 보지 못하면서 사는 극빈곤층이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빈곤층이 극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걸로 표현되고 있다. 위로의 이동이 아니라 하위 계층끼리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계층 이동이 어려워진다는 것은 개방사회가 아니라 폐쇄사회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폐쇄사회는 정보의 유통이 두절됨으로써 중국의 우한(武漢)처럼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불평등의 문제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불평등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숟가락론’을 말한다. 아카데미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각 정당은 축하 메시지를 발표하였다. 그런데 봉 감독을 블랙리스트에 올렸던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때 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은 과거사에 대한 사과는 한마디 없이 ‘기념비적 사건’이라며 그가 자유한국당 본거지인 경북 대구출신이므로 다양한 기념사업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 당은 9개월 전인 지난해 5월 이 영화가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을 때 “‘패러사이트(기생충)’ 같은 영화는 보지 않는다”(홍준표 전 대표),“좌파 감독이라서 그런지 한국 좌파들의 본질을 꿰뚫어 봤다”(차명진 전 의원) 고 냉소적인 평가를 내렸는데 이렇게 돌변한 것이다. 블랙리스트 사건은 2016년 10월10일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이 국회에서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 명단을 만들어 정부 지원에서 제외하고 있다”고 폭로하면서 밝혀져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당시 조윤선 장관이 구속된 사건이다. 당시 봉 감독이 만든 영화 ‘살인의 추억’과 ‘괴물’, ‘설국열차’ 등이 국가 공권력을 조롱하고 사회 불만세력의 봉기를 부추긴다고 지적되었다. 지난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가 발간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백서’에 의하면 봉 감독과 배우 송강호 등 9473명이 ‘문화체육관광부 명단’에 포함되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영화 기생충은 우리 사회에 긍정과 부정, 밝은 면과 어두운 면 등이 함께 공존하는 ‘모순’을  안고 있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지금까지 영화는 일반적으로 ‘권선징악’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신분상승의 욕구, 그리고 빈곤층과 극빈곤층 간의 경쟁, 마지막으로 모두의 비극으로 끝나는 스토리였다. 봉 감독은 이러한 상황을 한국의 반지하, 냄새, 화장실, 와이파이 등을 통해 독특한 블랙코미디형식으로 보여줌으로써 세계인의 눈길을 끌어모았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블랙리스트가 지금도 계속됐다면 기생충은 결코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블랙리스트가 해제되고 표현의 자유가 확대되면서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는 뜻이다. 우리는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민주화가 완성된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후 잠깐 주춤한 사이에 민주체제에서도 정권이 언론·문화를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이다. 워싱턴포스트지의 지적은 앞으로도 또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한편 이제는 경제자본이 사회부조리를 공격하는 작품에 투자해서 돈을 버는 세상이 되었다는 모순도 보게 됐다. 빈곤층의 부유층에 대한 증오심은 날로 더 높아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부유층의 자본이 그들을 증오하는 내용을 담은 기생충에 ‘베팅’하여 자본주의 꼭대기에 있는 영화상을 받도록 하고, 세계 각국에서의 상영으로 엄청난 이득까지 얻게 됐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반지하, 냄새, 계단 등이 창작환경에 따라서는 대박의 소재가 되는 모순도 연출되었다. 그런다고 우리가 해결을 소홀히 한다면 봉 감독의 본 의도와는 달리 불평등이 계속 ‘모순’으로 남게 될 것이다.

     

    김성(광주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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