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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날짜 : 2019. 06.06. 17:40

     

     

     

     

    공부가 뭘까?


    주홍 치유예술가·샌드애니메이션 아티스트

     

     

     

     

    조각가 자코메티의 작품 중 ‘홀로 걷는 인간’이 있다. 그 작품을 보면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 느껴진다. 홀로 걷는 것과 홀로 앉는 것은 숨쉬기를 기본으로 한다. 걸으면서 눈을 뜨고 의식의 차원에 있으면 시간과 공간은 같다. 그런데 눈을 감고 편안하게 이완한 뒤 깊게 숨을 쉬며 앉아 있으면 그 시간은 공간을 넘어서는 시간이다. 현실과 의식의 차원을 넘어선다. 깊은 하의식으로 진입하고 시공을 초월한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인간인데 인간을 잘 모른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평생 나를 알아가는 게 진정한 공부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인간을 알아가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른 공부들은 기능을 위한 것이고 삶의 방편을 위한 것이니, AI에게 맡겨도 될 공부다. 나는 평소에 아이들에게 ‘네가 하는 선택이 인간다운가’를 항상 생각하라고 말했다. 내가 성장하면서 엄마에게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말 “돈은 돌고 도는 것잉께, 잉간이 돼야헌다. 재벌이나 가난한 우리나 하루 세 끼 묵는 거 똑같응께, 배고픈 사람 놔두고 혼자 묵지말고 노나묵어라. 형제간에 돈땜에 싸우믄 집안이 망헐 징조다. 항시 잉간이 돼야헌다” 나도 모르게 엄마가 했던 ‘잉간이 돼야헌다.’라는 말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11점, 17점, 18점… 10점대의 성적표를 가져왔다.

    선생님께 물어봤다. “선생님, 100점 만점인가요?” “네, 어머님!” 아무리 공부를 안 해도 이런 점수를 어떻게 맞을 수 있을까? 고등학생 누나가 중학생 아들에게 물었다. “5지선다형 시험이지?” “응” “그럼 한 번호로만 찍어도 20점인데…” “엄마, 죄송해요. 공부를 안했어요.” “그럼 학교에서 뭘 했니?” “농구요.” “수업시간에는 잤어?” “아뇨. 잠은 안와요.” “그럼 수업시간에 듣기만 해도 이런 결과는 아닐 것 같은데…” “학교에서는 제가 못하는 것만 시험을 봐요.” “그럼 네가 잘 하는 건 뭔데?” “농구하고 미술하고 화장실 청소요.” “너는 뭐가 되려고 그러니?” “인간요.”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성적표를 두고 중학교 2학년 아들과의 대화가 그렇게 끝났다. 학교에서는 왜 아들이 잘 하는 건 시험을 보지 않는 것일까? 너무 당당하게 말하는 아들에게 할 말이 없었다. “학교가 싫어?” “아뇨, 학교공부가 싫어요.” “그럼 학교 그만 다닐래?” “학교에서 공부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친구들도 있고 밥도 맛있으니까 그냥 다닐래요.” “그래, 그럼 네가 재밌는 농구랑 미술이랑 화장실 청소는 열심히 해라. 친구들이랑 잘 지내고. 밥 잘 먹고…” 대화가 이렇게 끝났다.

    내가 우리엄마처럼 인간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자꾸 말해서 그럴까? 아들은 인간이 되는 게 꿈이라고 한다. 의사도 아니고, 변호사나 판사도 아니고, 선생님도 아니고, 배우도 아니고, 화가도 아니고, 인간이 되는 게 꿈이라니 미래가 정말 궁금하다. 중학교에서 전교 꼴등 아들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정말 잘 모르겠다. 할 것 없으면 그냥 푸른 길을 걷겠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자코메티의 작품 걷는 인간이 의미 있게 눈에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그 아들이 2박3일 지리산 천왕봉까지 등반을 하고 돌아왔다. 성취감이 느껴졌는지 기분이 좋았다. 벌겋게 탄 팔뚝과 목덜미에 오이를 붙여주며 오랜만에 밥상 앞에 함께 앉았다. 새벽 세 시에 일어나 친구들과 함께 산을 오르면 어둠에서 서서히 밝아오는 하늘이 신기했고 붉은 구름이 가깝게 느껴져서 감탄했다고 한다. 단체로 천왕봉까지 산을 오르고 함께 내려오는 것이라 선생님께서 발이 빠른 사람이 맨 뒤에서 따라오라고 해서 맨 뒤에서 따라가느라 더 느렸고 힘들었다는 것이다. “혼자 갔으면 그 시간에 두 번은 갔을 걸요. 맨 뒤에 가니까 답답했어요. 그래도 친구들이랑 같이 천왕봉까지 간 것이 중요하죠.” 이렇게 인간다운 생각이 몸과 마음에 스며들고 자라면 좋겠다. 무엇을 해서 먹고 사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화장실청소를 잘 해서 먹고 살 수도 있고 그림을 잘 그려서 먹고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걸음이 느린 친구와 함께 천왕봉까지 걸어가듯이 그렇게 살면 된다. 그렇게 걷다가 멈춰서 홀로 자기 자신을 마주하며 깊은 명상에도 잠기고, 시공을 초월한 지성과 만나는 경험을 한다면, 백수로 살아간들 어떠랴! 아들에게 물었다. “네 성적표를 신문에 써도 될까?” “굳이 신문에 까지…좀 부끄럽잖아요.” “네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부끄럽다면 그런 일은 하지 말아야지.” “그럼, 괜찮아요. 공부는 하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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