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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서 3·1운동 100주년 학술세미나...노성태 국제고 수석교사 판결문 분석

     

     2019/02/19 17:07

     

     

    ⓒ 광주가톨릭평화방송

     

    (광주가톨릭평화방송) 이선영기자 = 3·1운동 당시 광주에서 103명이 실형을 살았고 이 가운데 학생이 53명이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광주 3·1혁명 100주년 기념사업회는 내일(20일)광주 동구에 위치한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에서 '광주 3·1혁명 100주년 학술세미나'를 개최될 예정입니다.

     

    학술세미나에서는 노성태 광주 국제고등학교 수석교사와 임선화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위원, 김병학 고려대 인문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이 주제발표에 나섭니다.

     

    노성태 수석교사는 세미나에서 광주 3·1운동 주역 103명의 판결분석 결과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노 교사의 발표자료에 따르면 1919년 광주 3·1만세 시위는 광주 양림동 기독교인들과 함께 2년 전 조직된 비밀결사 '신문잡지종람소' 청년 학생들의 조직적인 가담으로 치밀하게 준비됐습니다.

     

    또 광주 3·1혁명으로 103명이 실형을 선고받았고, 이 가운데 10대와 20대가 89명, 학생이 53명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학생은 2명, 숭일학교 학생 24명, 수피아 여학생 20명, 농업학교 학생 5명, 보통학교 학생 1명 등의 순이었습니다.

     

    거주지별로 보면 양림교회와 숭일, 수피아학교, 기독교병원 등이 소재한 양림동 거주민이 62명으로, 광주 3·1혁명은 기독교인과 학생이 주도한 가운데 농민과 상인, 이발사 등 다양한 계층이 폭넓게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특히 광주제중원 직원 황상호 등은 항일투쟁의식을 고취하고 서울의 만세시위 소식을 전하는 내용의 광주지역 첫 신문 '조선독립광주신문'을 만들어 시위 현장에 집중 배포해 시위 확산에 기여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광주 3·1운동의 전모를 알려주는 자료가 거의 없고, 일부 자료들이 새로운 연구 없이 그대로 실리면서 많은 오류가 생겨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노 교사는 "회고 등에 의지하다 보니 이름이나 날짜, 형량, 최초 시위지, 시위 방향 등이 판결문과 차이가 있었다"며 "이런 오류를 바로잡는 등 광주 3·1운동사에 대한 재정리가 시급하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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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화:062)234-2727 팩스:062)234-2728 이메일:r-cultur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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