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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사육신 공원에 사칠신이라니

     

    김세곤(호남역사연구원장)

     

    아니, 이럴 수가. 사육신 공원에 사칠신이라니. 1456년 단종 복위에 실패하여 순절한 사육신은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부인데.

    주말에 서울 노량진의 사육신 공원을 찾았다. 불이문(不二門)을 지나니 정조 6(1782)에 세워진 사육신 비각과 1955년에 세운 사육신 육각비가 있다.

     

    그런데 의절사(義節祠) 사당에는 위패가 7개이다. 묘역에도 묘가 7개이다. 황당하여 인터넷에서 사육신 공원을 검색하였다. 그랬더니 위키백과“1978년에 서울특별시가 3,240평이었던 사육신 묘역을 9,370평으로 확장하여 충효사상의 실천도량으로 정화하였는데, 이 때 사육신 논란이 있어 김문기를 추가하여 일곱 분의 묘가 모셔지게 되었다고 설명되어 있다.

    1978년에 사육신 논란이 있었다? 그렇다면 박정희 대통령 때이다. 무슨 사연으로 사육신에 김문기가 추가되었을까?

     

    이재호 교수가 2008년에 발간한 <조선사 3대 논쟁> 책의 사육신, 유응부인가 김문기인가를 읽었다. 사연은 이렇다.

     

    1976년에 한 방송작가가 조선일보에 추강 남효온이 쓴 <육신전>중의 유응부는 김문기를 잘못 기재한 것이므로, 사육신은 유응부가 아니라 김문기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는 전공학자의 논설이 아니어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당시 권력층의 작용을 받은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최영희)가 이 문제를 규명하기 위한 특별위원회(위원은 이병도 · 이선근 · 최영희 · 백낙준 등 15)를 구성함으로써 논쟁에 가세했다.

    1977922일 국사편찬위원회 특별위원회는 김문기를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현창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했고, 이 사실이 923일 동아일보에 크게 보도됨으로써 국민들의 큰 관심과 혼란을 일으켰다.

     

    그런데 학계 일부에서 사육신이 유응부가 아니라 김문기라고 한 국사편찬위원회의 판정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하였다. 이가원, 김성균, 정구복, 이재범, 이재호 등 여러 학자들이 언론을 통해 사육신은 김문기가 아니라 유응부가 맞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에 김창수와 이현희가 다시 사육신이 김문기라는 주장을 하여 찬반양론이 맞섰다.

     

    그런데 1978년에 국사편찬위원회는 노량진 사육신 묘역에 김문기의 허장(虛葬 시신 없이 치르는 장례)을 봉안하고, 유응부의 묘도 그대로 존치한다.’는 애매모호한 결정을 내림으로써, ‘사육신 묘소사칠신 묘소로 바뀌고 말았다.

     

    이런 중차대한 결정은 국사편찬위원회가 전공 학자의 자문을 받고 공청회를 여는 등 여러 방법으로 의견을 수렴하여야 했다. 그런데 국사편찬위원회는 특별위원회 위원 15명의 학계에서의 권위만 믿고 수백 년 간에 걸쳐 형성된 사육신명칭을 혼란케 하고 말았다.

     

    당초 절의의 상징 사육신이란 표현은 생육신 남효온(1454-1492)이 지은 <추강집>육신전에서 비롯되었다. 14904월에 김일손(1464-1498)은 남효온이 지은 육신전초안을 사관(史館)과 승정원일기에 의거해 감수하였다. 김일손은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사초에 올린 사건으로 일어난 무오사화로 능지처참을 당한 인물이다.

     

    한편 세조 임금 당시 단종복위운동의 진상은 누구나 거론하기 꺼리는 기피대상이었고, <세조실록>에도 사육신이란 명칭은 없고, 단종도 자살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다가 1691126일에 숙종은 성삼문 등 여섯 사람을 복작(復爵)하고, 관원을 보내어 치제(致祭)하게 하였으며’, 노량진에 민절사(愍節祠)를 세웠다.

     

    더 나아가 1791년에 정조는 영월 장릉에 배식단을 세우고 단종을 위해 충성을 바친 모든 신하들에게 어정배식록’(임금의 명에 의해 공신의 신주를 배향하는 것)을 편정하도록 했는데, 여기에는 사육신뿐만 아니라 육종영(六宗英) ·사의척(四懿戚) · 삼상신(三相臣) · 삼중신(三重臣) · 양운검(兩雲劒)등이 망라되어 있다. (정조 15221일자 정조실록)

    여기서 육종영은 안평대군·금성대군·화의군·한남군·영풍군·이양 등 여섯 종실이고, 사의척은 송현수·권자신·정종·권완 등 네 외척, 삼상신은 김종서·황보인·정분 등 세 재상, 삼중신은 민신·조극관·김문기, 양운검은 성승·박쟁을 말한다.

     

    따라서 김문기는 삼중신에 해당되고 사육신이 아님은 정조 때에 명확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조 이후 186년이 1977년에 국사편찬위원회가 사육신에 김문기가 포함된다고 오판하여 서울 노량진 사육신공원이 지금은 사칠신공원이 되고 말았다.

     

    이재호 교수는 <조선사 3대 논쟁> 책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사육신 오판작업에 관계한 사람들은 권력을 빙자해 역사를 왜곡 조작했는데, ‘사육신 오판을 바로 잡는 일은 역사를 바로 세우는 중대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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