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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청백리와 탐관오리 후손들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조선시대 청백리 제도를 살펴보면 청백리의 후손들은 특별 채용이 되었고, 탐관오리 후손들은 벼슬길이 막혔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했을까? 청백리 후손은 더 가난하였고, 탐관오리 후손은 떵떵거리고 잘 살았다.

     

    이는 조선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星湖 李瀷 : 1681 숙종 71763 영조 39)<성호사설> 책에 나와 있다. 11권 인사문(人事門)청렴과 탐오(廉貪)’ 글을 읽어보자.

    나라는 백성에 의지하고 백성은 재물에 의지하는 것이니, 재물이 고갈되면 백성이 피폐(疲弊)하고, 백성이 피폐하면 나라가 망하게 된다. 이는 알기 어려운 말이 아니다.

     

    위로는 공경대부부터 아래로는 유생(儒生)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백성을 우대하고 풍족한 생활을 하게 할 방도를 말하지 않는 자는 없으나, 한 가지 시책(施策)도 단행(斷行)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조선 시대 양반들은 누구나 백성을 살찌우게 하자고 말하지만, 한 번도 그것이 시행된 적이 없다. 말로만 할 뿐 실천이 없다. 공담 空談만 있고 실학 實學은 없다.

     

    생활을 풍족하게 하는 것은 탐오를 금하는 데 달려 있다. 탐오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착취하여 사리사욕을 챙기는 것이다.

     

    국조(國朝) 이래로 청백리(淸白吏)에 선발된 자가 약간 명에 지나지 않는데, 조정에서 매양 그 자손을 등용하라는 명령은 있으나, 오직 뇌물을 쓰며 간구(干求)하는 자가 간혹 벼슬을 얻고 나머지는 모두 초야(草野)에서 굶주려 죽고 만다.

     

    이제 내가 본 바를 적어보겠다. 우리 마을에 고관(高官)을 지내고 청백리로 뽑힌 분이 있었다. 그는 청렴했기에 가난했고, 가난했기에 자손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또 사사로운 이익의 길을 뚫지 못해 백여 년이 지나도록 미관말직도 얻지 못하고 거의 다 구렁텅이에 빠진 처지가 되었다.

     

    청백리는 청렴했기에 더욱 가난했고, 가난했기에 자손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또 그 후손은 백여 년이 지나도록 미관말직도 못 얻고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정말 슬픈 일이다. 그러면 탐관오리들은 어떠한가?

     

    같은 시기에 가혹한 수단으로 재물을 거두어들여서 좋은 전답과 집을 마련하고, 기세를 올리고 이름을 날리며 친구를 널리 사귀어 세상의 여론을 좌우하고 높은 벼슬에 올라 후한 녹봉을 먹은 자와 저 청백리를 비교해 본다면, 그 차이는 하늘과 땅 사이보다 더 크다.

     

    하기야 지금 세상에 탐관오리를 다스리는 법이 또한 엄하기는 하다. 그 자손까지 벼슬길이 막아버리니 말이다. 하지만 이는 한갓 법일 뿐이다.

     

    어디 저 대소 관원을 한번 살펴보아라. 누구를 막론하고 집은 넓고 화려하며 노비는 피둥피둥 살쪄있다. 하지만 한 사람도 법에 걸려 죽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음은 무슨 까닭인가?

     

    온 세상 사람에게 빙벽(氷蘗)을 먹고 마시듯 청고(淸苦)한 생활을 하라고 한다면 말이 안 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법망(法網)에서 벗어난 자가 너무나 많은 듯하다.

     

    법 따로 현실 따로 노는 세태가 정말 개탄스럽다. 성호 이익이 살던 시기는 숙종 · 영조 시절이다. 그런데 성호 이익의 시대만 그러하지 않았다, 한말이 되면 부패는 더욱 심하였고 백성들은 가렴주구에 시달리다 못해 민란을 일으켰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나이 16세에 성호 이익의 저서들을 처음 접하였고 성호 이익의 학문을 준칙으로 삼았다. 그는 1821년에 <목민심서> 자서(自序)에서 이렇게 적었다.

     

    오늘 날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거두어들이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기를 줄은 모른다. 백성들은 여위고 시달리고, 시들고 병들어 쓰러져 진구렁을 메우는데, 그들을 기른다는 자들은 화려한 옷과 맛있는 음식으로 자기만을 살찌우고 있다.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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