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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칼럼


     

    배고픈다리와 홍림교


     

    백수인_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이사장, 조선대학교 교수



     

    ‘배고픈다리’, 참 특이한 이름이다.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에서 무등산국립공원 증심사로 가는 초입, 증심천을 건너는 조그만 다리이다. 예전 다리를 허물고 2000년대 초에 새로운 다리를 완공하고 나서 ‘무지개 뜨는 다리’라는 뜻의 한자 이름인 ‘홍림교(虹臨橋)’로 바꿨다. 그렇지만 많은 광주 사람들은 아직도 이 다리를 ‘배고픈다리’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배고픈다리’라는 옛 이름은 점점 잊혀갈 것이고, 그 자리에 ‘홍림교’만 남게 될 것이다. 시내버스 정류장 이름도 ‘홍림교’가 되었고, 그 곁의 사거리를 ‘홍림교사거리’로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국 곳곳에서 고유어 지명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
     

    한글이 없던 시절 고유어 지명을 표기하기 위해 음과 훈, 뜻을 해석해서 한자어 지명으로 바꾸어 기록하고 부르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아우내’를 ‘병천(竝川)’으로, ‘노들나루’를 ‘노량진(鷺梁津)’으로, ‘밤실’을 ‘율곡(栗谷)’으로 바꾼 예가 그것이다. 그런데 ‘배고픈다리’의 경우는 전혀 엉뚱한 한자 이름을 붙인 것이다.
     

    모든 명명행위에는 그 대상을 바라보는 사람, 또는 집단의 ‘인지’가 들어 있다. 그 ‘인지’의 밑바닥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사상과 역사가 들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명명의 방법은 대체로 비유적이다. 가령 ‘갈치’에서 ‘갈’은 ‘칼’의 중세어이다 따라서 ‘갈치’라는 이름에는 우리 옛 선조들이 이 물고기를 ‘칼’에 비유한 인지가 들어있다. 중국어에서는 갈치를 ‘따이위(帶魚)’라고 하는데, 이는 이 물고기를 ‘띠’처럼 생겼다고 보았던 한족들의 인지인 것이다. 또한 우리말 ‘호박’, ‘수박’은 모두 ‘박’으로 인지하여 ‘호박’은 ‘호나라에서 온 박’, ‘수박’은 ‘물이 많은 박’을 뜻하는 명명이다. 그렇지만 중국의 한족들은 이를 ‘오이’로 인지하여 ‘호박’은 ‘난구아(南瓜)’ 즉 ‘남녘에서 온 오이’로, ‘수박’은 ‘시구아(西瓜)’ 즉 ‘서양에서 온 오이’로 인지한 것이다. 이처럼 이런 단어들에는 우리 겨레와 한족들의 다른 인지와 시각이 드러나 있다. 그러므로 같은 사물이라도 비유의 대상과 인지 기준에 따라 달리 명명되기 때문에 모든 이름에는 그런 뜻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배고픈다리’라는 이름에는 ‘다리’라는 사물을 인간과 동일하게 보는 세계관이 들어 있다. 그것은 ‘배고픈’의 주체가 ‘다리’이기 때문이다. 배고픔을 견디며 살아가는 우리 선조들은 다리 가운데가 지면보다 약간 꺼져 있는 모습을 자신들의 배고픈 처지와 동일시했다. 이 이름에서는 무등산에서 등에 나뭇짐을 가득 지고 내려오며 이 다리를 건너는 허기진 사람들의 마음을 볼 수 있다. 또 거기에는 배고픔을 견디며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역사가 들어있다. 이 다리를 새로 고쳤다고 하여 고유어 이름을 버리고 ‘홍림교’라는 한자 이름을 꼭 붙여야만 했을까.
     

    “5.18민중항쟁사적 13호”는 “배고픈다리 일대”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여기 있던 배고픈다리(현 홍림교) 일대는 5.18광주민중항쟁이 치열하던 5월 21일, 시민군이 시내 중심가에서 계엄군을 물리친 후 모범적으로 지역 방위를 했던 곳이다.

    조선대학교 뒷산으로 퇴각한 계엄군이 다시 시내로 진출할 것에 대비, 그날 해질 무렵부터 이 지역 예비군 등 젊은이들이 주축이 되어 시민군을 편성하고 이 다리를 중심으로 방어망을 구축하여 물샐틈없는 경계를 폈다. 22일 자정 무렵에는 인근 숙실마을에서 내려오던 계엄군과 30여 분간 총격전을 벌여 그들을 물리치기도 했다. 주민들은 밥을 지어오고 담배와 음료수를 가져다주는 등 시민군과 한 덩어리가 되어 이곳을 지켰다.



     

    이처럼 한편으로 1980년 아픈 역사의 한 쪽이 새겨져 있는 곳이 ‘배고픈다리’이기도 하다. 이 다리를 현대적으로 새로 만들었다고 해서 ‘역사’가 서려 있는 ‘배고픈다리’라는 이름을 버리고 ‘홍림교’라는 한자 이름으로 바꾸는 그 의식이 바람직한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소중한 우리 고유어 이름을 비속어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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