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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칼럼


    광주학생독립운동 현장, 사적비 건립하자

    노성태(남도역사연구원장)

     

    광주·전남을 부르는 애칭이 몇 있다. ‘정의로움’의 고장 의향(義鄕), ‘예술’의 고장 예향(藝鄕), ‘맛’의 고장 미향(味鄕)이 그것이다. 셋 중 어떤 애칭도 광주·전남이 어떤 곳인지를 알려주는 상징어가 아닐 수 없다.

     

    그 중 ‘정의로움’의 고장을 상징하는 ‘의향’은 근·현대 광주·전남인들이 시대정신인 항일·독립·민주·통일을 위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농축하여 보여준다. 광주·전남은 반봉건·반외세를 외친 동학농민혁명의 중심지였고, 한말 최대 의병항쟁지였으며, 일제강점하 3·1운동 이후 최대 규모인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발발지였다.

     

    이러한 시대정신을 실천한 전통은 광복 이후 반독재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진다. 친일 이승만 독재권력을 무너뜨린 4·19혁명은 3·15부정선거가 원인이 되었다. 3·15부정선거 최초의 규탄 시위지는 마산보다 3시간 빨리 일어난 광주 금남로였고, 금남로를 적신 조계현의 피는 4·19를 잉태한 첫 피였다. 4·19혁명 당시 광주는 광주고등학교를 비롯, 전 고교생이 금남로를 가득 메웠다. 1980년, 광주 시민들은 전두환 군부가 민주주의를 찬탈하려고 하자,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

     

    광주·전남인들이 실천한 시대정신인 ‘정의로움’은 옛 전남도청 앞 ‘민주의 종’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민주의 종에는 하늘을 나는 비천(飛天) 대신 항일·독립의 상징물인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과 반독재 민주의 상징물인 ‘5·18민주항쟁추모탑’이 새겨져 있다. 민주의 종은, 광주·전남인이 실천한 상징적인 시대정신이 ‘광주학생독립운동’과 ‘5·18민주항쟁’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광주·전남인들의 역사 정체성이 된 두 사건은 우리들이 기리고 계승해야 할 우리들의 소중한 역사 자산이 아닐 수 없다. 5·18민주항쟁의 경우 광주·전남 곳곳에 그 흔적을 기리는 기념물이 남아 있는 이유다. 광주의 경우 사적으로 지정된 현장만도 30곳이나 된다. 전남대 정문이 1번이고 금남로가 4번이며, 5·18민주광장 및 옛 전남도청, 상무관은 5번이다.

     

    오늘 광주의 역사 정체성의 핵심이 된 5·18민주항쟁은 항일·독립이라는 역사 정체성의 축적 위에서 가능했다고 생가한다. 그러나 오늘 광주는, 좀 심하게 말한다면 5·18민주항쟁만의 도시다. 모든 예산도, 모든 기억장치도 대부분 5·18로 한정된다. 5·18현장의 30개 사적도 그 중 하나다.

     

    광주정신의 또 한 축인 광주학생독립운동의 흔적을 품고 있는 현장도 많다. 흥학관(동구 광산동 100번지)은 1924년 광주고보 맹휴투쟁 당시 전남학부형 대회의 개최지 및 1929년 11월 3일 학생 시위를 지휘했던 지휘처로,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산실이었다. 운암역(운암동 786~18번지)은 한·일 학생 간 열차 속 충돌지였고, 최규창 하숙집(동구 금동 157~1번지)은 성진회 결성지이자 1928년 맹휴투쟁 중앙본부였다. 양림동 김기권 집(남구 양림동 200번지)은 1929년 11월 3일 오후 시위와 12일의 시위를 주도하고 기획한 독서회 중앙부 결성지였고, 김기권 문방구점(금남로 4가 금남로 공원)과 장재성 빵집(금남로 4가 금남로 공원)은 독서회 학생들의 비밀 아지트였다. 수기옥정 우편소(동구 충장로 5가 49번지) 앞은 11월 3일 한·일 학생들의 1차 충돌지였고, 광주 역전(동구 대인동 324-9번지)은 한·일 학생들의 집단 충돌지였다. 동문다리(현 한미쇼핑사거리)는 한·일 학생들의 대치 장소였고, 관동여관(동구 대인동 183번지) 여주인은 장작을 내주어 학생들의 사기를 높여주었다. 광주고보 강당(북구 누문동 144번지)은 11월 3일 오후 시위를 논의한 장소이며, 전남도립광주의원(동구 학동 8번지) 앞은 경찰과 학생들의 마지막 충돌 장소였다. 광주형무소(동구 동명동 200번지)는 시위 가담 학생들이 체포되어 수감 된 장소였고, 광주지방법원(동구 금남로 3가 1번지)은 173명이 재판을 받은 곳이었다. 동구 금동 97-1번지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 장재성과 장매성의 집터이고, 북구 누문동 93번지는 학생독립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킨 장석천의 집터다. 동구 장동 39-12번지는 소녀회 회원들이 활동했던 광주여고보 터이고, 북구 임동 92번지는 광주고보와 더불어 주도적으로 참여한 광주농업학교 터이며, 동구 동명동 143-14번지는 독서회 등을 결성한 전남 도립사범학교 터다.

     

    4년 뒤인 2029년은 광주학생독립운동 발발 100주년이 되는 해다. 광주의 역사 정체성의 한 축을 이룬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요한 현장에도 5·18처럼 사적으로 지정, 표석을 세워야 한다. 5군데도 좋고, 10군데도 좋다. 동학농민혁명과 한말 의병의 현장이 첨가되어진다면 더욱 좋겠다. 그래야 광주·전남인들의 정체성이 된 두 축인 항일·독립과 민주가 모두 우리들의 자긍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미래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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