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여
과일값이 왜 이리 비싼거야
이현식(이현식멘토스쿨 원장, 재단 후원이사)
해외로 여행을 갈 때면 그 나라에서 생산되는 과일을 사 먹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먹기 힘든 과일을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 때 해외 어학연수 하던 시절 기억 속에도 그 나라 시장에서 저렴하게 사 먹었던 망고나 멜론에 대한 추억이 많았습니다. 크기는 작지만, 가격은 훨씬 저렴했던(대략 6~7천 원) 수박을 부담없이 사 먹곤 했었죠. 주머니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았던 학생 시절에도 제 쉐어하우스 냉장고에는 항상 과일이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지금도 우리집 냉장고 한켠에는 포도며 사과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과일을 좋아하는 아내와 저를 위한 간식입니다. 하지만 마트에서 과일을 고르는 것이 예전처럼 혹은 외국에서처럼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죠. 여름 수박은 기본 2만 원에서 조금 큰 것은 3만 원이 훌쩍 넘습니다. 아침마다 갈아먹던 사과도 최근 1~2년 사이에 가격이 많이 올랐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5~6개 들었던 사과 한 팩이 2년 전 9천 원대였지만 지금은 1만 3~4천 원대로 올랐습니다. 작년 겨울에는 그 흔했던 귤도 제대로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예전엔 겨울이 되면 한 봉지 5천 원에 마음껏 먹을 수 있었던 귤값이 이제는 많이 올라 1만 원 이하로는 구입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다 보니 선뜻 구매를 결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왜 이렇게 우리나라 과일 가격이 비쌀까? 아니 왜 이렇게 갑자기 많이 올랐을까? 이런 궁금증이 생겨 자료들을 찾아보니 우리나라가 과일 가격이 비싼 이유 그리고 최근에 가격이 많이 오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2023년 기준 OECD가 발표한 「식음료 가격 지수」를 보면 한국은 147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는 OECD 평균(100 기준)보다 약 47% 높은 수치입니다(The Korea Times). 한국은행 및 관련 보고서에는 “한국의 농산물·신선식품 가격이 OECD 평균 대비 약 56% 높다”는 언급도 있었습니다. 또한 최근 과일 가격 인상 폭이 매우 크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예컨대 2024년 2월 기준 “생과일 가격이 전년 대비 41.2% 상승”했다는 통계와 “사과는 71.6% 상승, 배는 61.1% 상승 등 특정 과일이 크게 뛰었다”는 보도(경향신문)도 있었습니다. 이런 지표들을 보면, 우리나라 과일 가격은 최근 들어 굉장히 빠르게 올랐으며, 기본적으로 경제력이 비슷한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도 이미 상당히 높은 수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조사해 보니 우리나라가 타 국가에 비해 과일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는 다양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 우리나라는 식량 자급률이 낮고 농작물 생산 기반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편입니다. 농업 면적 자체가 작고, 기후나 토지 조건도 한계가 있어서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기 어렵습니다. 한마디로 땅이 좁은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둘째, 농가 → 경매장 → 도매 → 소매 등의 유통 경로가 복잡하고 각 단계에서 유통비나 마진 등이 붙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특히 경매 또는 중간 상인 단계가 많을수록 소비자 가격이 올라갈 여지가 커집니다. 셋째, 기후 변화와 그에 따른 생산량 변동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폭염, 가뭄, 이상기후 등이 과일 생산량을 줄이고 가격을 급격히 밀어올린 사례들이 많습니다. 이제는 과일 가격 상승의 고정요인으로 ‘이상기후’가 자주 거론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수입 관세, 무역 제한 그리고 검역 절차 부담이 크다는 것입니다. 외국 과일 수입에 제약이 많거나 검역 부담이 크면 해외 과일을 저렴하게 들여오기 어렵고, 국내 과일 쪽으로 수요가 쏠리면서 가격이 올라갈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검역이 까다로운 나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이유로 인해 우리나라의 과일 가격은 비슷한 경제 규모의 국가에 비해 상당히 비싼 편입니다.
우리나라는 과일의 가격 변동성도 매우 큰 편입니다. 최근에는 사과, 배, 귤 등의 주요 과일들의 가격이 많이 올랐습니다. 구체적으로 사과의 경우 경상북도(청송, 예천, 안동 등)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데 최근 수확량이 감소하고 식생지수도 악화되었습니다. 2023년 사과 생산량이 전년 대비 약 30.3% 감소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ZUM 뉴스). 또한 기상 악화와 이상 기온으로 봄철에 냉해와 서리가 있었고 저온 피해(꽃눈/개화시기 문제)도 발생했습니다. 이로인해 착과가 줄었고, 생육 상태도 나빠졌습니다(ZUM 뉴스). 그리고 집중 호우, 장마, 일조량 부족 등 여름철에 비가 많이 오고 햇빛이 부족했던 날들이 많아 열매 품질도 저하되고 수확 가능율이 떨어졌으며 병충해도 증가해 방제 비용도 증가했습니다. 이런 이상 기온과 병충해 등 다양한 원인으로 전년 대비 약 30%가량 생산량이 감소했고 이는 곧바로 가격상승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과일 가격상승을 줄일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과일값을 낮추기 위해서는 정부와 민간이 함께 구조적인 개선을 추진해야 합니다.
먼저 정부 부문에서는 유통 구조의 효율화를 통해 불필요한 유통 단계를 줄이고, 산지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직거래 시스템을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냉장 유통망과 저장시설 확충, 물류비 지원 등을 통해 비용을 절감해야 합니다. 농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농자재 공동구매를 지원하고, 스마트팜 기술을 보급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정책도 중요합니다. 아울러 과잉생산이나 공급부족에 대비한 수급조절제도를 강화해 과일 가격의 급등락을 완화해야 합니다.
민간 부문에서는 생산자, 유통업체, 소비자가 함께 참여하는 효율화 노력이 필요합니다. 생산자 협동조합을 통해 공동구매와 공동판매를 추진하면 유통비를 줄일 수 있고, 유통기업은 AI 수요 예측과 산지 직송 시스템을 통해 재고와 폐기를 줄일 수 있습니다. 또한 상품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품질이 좋은 ‘못난이 과일’ 유통을 활성화하면 낭비를 줄이고 소비자에게 저렴하고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 또한 제철 과일 중심의 소비를 실천하고, 직거래 장터나 구독형 과일 서비스 등을 이용함으로써 합리적이고 예측가능한 과일소비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결국 과일값을 낮추기 위해서는 생산·유통·소비 전 과정의 효율화와 협력이 필요합니다. 정부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민간은 기술과 협업으로 혁신을 이끌어갈 때 국민들이 합리적인 가격에 신선한 과일을 한층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선거 때에는 이러한 부분에 공약을 추진하는 후보나 정당이 있는지 잘 살펴보는 것도 시민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과일 가격 억제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