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여
너그들이 뭐라해도 봄은 온당께!!!
이현식(재단 편집위원)
2024년 12월 3일 밤. 저는 거실에서 실내자전거를 타고 있었습니다. 숨이 차서 땀을 뻘뻘 흘리며 하루의 피로함을 운동으로 녹여내는 중이었습니다. 아내는 거실과 부엌을 오가며 요리 중인 듯했고 가끔 휴대폰을 보는 모양이었습니다. 아들이 곧 학원을 끝내고 귀가하기를 기다리는 12월 어느 화요일의 평범한 가정의 모습. 모든 것이 평화롭고 지극히 정상적인 저녁 풍경이었습니다.
아내가 “여보, 계엄이래요.”라고 말했을 때 저의 반응은 약간 신경질적이었습니다. “무슨 소리예요?!” 운동 중이라 숨이 차기도 했지만, ‘계엄’이라는 단어는 저의 뇌영역 어느 부분에서도 현재의 상화과 논리적인 접근이 불가능한 단어였기에 분명 아내의 실언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전거에서 내려오지도 않은 채 그 후로도 몇분간 계속 페달을 돌렸습니다. 운동을 마치고 자전거에서 내려온 저에게 아내가 휴대폰에 뜬 뉴스를 보여주었고 조금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자 TV를 켰습니다. 거기에는 대통령이 계엄 포고문을 읽고 있는 모습이 생중계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미친×.” 지난 20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절대로 욕을 하지 않았던 제게서 나온 첫마디였습니다. 도대체가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떻해야 하나? 서울로 가야 하나? 지금 광주 구도청에는 사람들이 모일려나?’ 그날밤 계엄소식을 접한 후 저의 첫 반응은 ‘혼돈’이었습니다. 평온한 일상이 산산히 깨지는 불안감. 그리고 그 불안은 곧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도대체 네가 뭔데.” 라는 소리가 턱밑까지 차올랐습니다. 지난 3년간 뉴스까지 멀리하며 현상황에 가급적 순응하며 살려 노력했던 인내심이 밑터진 플라스틱 양동이에서 쓸려나가는 물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가 팽창되어 나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분노라기보다는 모욕감이었습니다. 나와 내 가족의 일상이, 대한민국 국민들의 누리는 평화가 소수 권력자들의 어리석은 판단으로 깨어질 수 있다는 현실자각, 그 자각이 들자 그들을 향해 할수 있었던 거라곤 달랑 한 장의 투표권이 전부인 내 자신이 너무도 초라해 보여 수치심마저 들었습니다. 상황은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그들이 절대적으로 틀렸습니다.
지난 3개월간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심판이라는 엄청난 사건으로 우리 사회는 거대한 고난의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자체가 가십거리가 되어 국제적인 조롱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사회의 의견이 둘로 나뉘어 대립과 반목이 생기고 그 차이가 극에 달해 세상이 둘로 쪼개진 듯 보입니다. 탄핵심판정에서 피고인의 변호인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지금까지 내가 알았던 정의와 윤리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자괴감마저 듭니다. 재판 때마다 태극기를 들고 피고인을 환호하는 사람들. 국가기관인 법원까지 불법으로 침입하여 난동을 부리고 판사를 가해하겠다 말하는 폭도들. 하다하다 이제는 무리를 지어 광주까지 와서 광주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탄핵반대 집회를 하며 광주의 민주정신을 우롱하는 파렴치한 그들을 봅니다. 그들 뒤에서 이러한 상황을 조종하고 사주하는 또다른 그들과 그러한 그들을 묵인하며 허용하는 또다른 무리의 그들을 봅니다. 비참하지만 견뎌야 합니다. 정의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광주시민들은 이미 경험을 통해 DNA에 새겨진 물리적 특성으로 알고 있습니다.
3월입니다. 버려진 광야에도 언제나처럼 꽃은 핍니다. 무슨무슨 이유로 피고인이 구속에서 풀려난 채로 조사를 받게되었다 합니다. 마치 죄사함을 받은 순결한 인간인 양 밝게 웃는 모습에 또한번 모욕감을 느끼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결국에는 온전한 상태로 되리라는 것을. 그때까지 우리 시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하며 그들이 또다른 몽니를 부리지는 않는지 큰 눈으로 감시해야 합니다. 이번 일을 경험 삼아서 앞으로도 우리 시민들이 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보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정의롭고 윤리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은 결국 조직된 슬기로운 시민들의 몫입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몫을 묵묵히 수행해 나갈 것입니다. 그나저나 2025년의 봄은 정말로 느리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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