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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칼럼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이달의 칼럼 2월호]

    대선을 앞두고 섬뜩한 단어 하나가 회자된 적이 있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으로부터 촉발된 이른바 ‘멸공’논란인데 야당 대선후보까지 가세한 정치판 쇼로 번져 한동안 시끄러웠다. 다행히 금방 수그러들었지만 ‘멸공’이라는 단어를 귀에 못박히게 듣고 살았던 세대들 입장에서는 섬뜩하고 거북한 기억이 떠올라 불편했으리라.

    ‘멸공(滅共)’이라는 단어는 과거 군사독재시절, 그리고 냉전시기 ‘공산주의 또는 공산주의자를 완전히 없애버리자, 멸망시켜버리자’는 뜻의 단어로 많이 사용했다. 군대에서는 ‘멸공’이라는 경례구호로 썼고 사회 곳곳에서도 구호나 표어로 쉽게 볼 수 있었던 단어다.

    여기서 ‘멸(滅)’은 물을 부어 불을 꺼버리는 정도의 상태로 만들어버린다는 뜻에 가깝다. 불가에서도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상태, 평온한 상태를 표현한 개념, 열반의 경지를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곧 ‘멸’은 쉽게 풀자면 싸그리 뭉개고 없애버린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정말 과거 ‘멸공’을 소리높이 외치고, 동네마다 ‘멸공방첩’을 써붙이던 시절은 공산주의자는 한 사람이라도 걸리면 뼈도 추리지못할 정도로 ‘멸’해버릴 사회 분위기였다. 무서운 시대였다.

    그런 격하고 무섭고 무시무시한 단어는 많다. ‘박멸(撲滅)’도 그런 단어다. ‘병해충 박멸’이니 ‘기생충 박멸’이니 하는 말로 쓰인 단어인데 ‘박’이 ‘칠 박’이니 몽둥이나 어떤 강력한 칠 것으로 무엇인가를 두들기고 뭉개서 완전히 없애버린다는 뜻 정도의 단어다. 무섭다.

    ‘박살(撲殺)’ 도 그렇다. ‘때려 죽여 없애다’에 해당하겠다. 군대서 ‘초전박살’ 하면 처음 맞닥뜨려서 적을 죽여서 완전히 없애버리겠다는 거다.

    무언가 나쁜 현상을 뿌리뽑아 없애자고 할 때 쓰는 ‘발본색원(拔本塞源)’도 마찬가지다. ‘뿌리를 뽑고, 물 새어나올 틈조차 막아서 없앤다’는 정도의 뜻을 담은 단어다. 센 단어다. 이보다 한 술 더 뜨는 단어가 하나 있다. ‘척결(剔抉)’이다. 나쁜 어떤 현상을 없애자는 뜻에서 발본색원과 비슷하나 내용을 보자면 훨씬 더 무섭다. 소름이 돋을 정도다. 여기서 ‘척(剔)’은 뼈에 붙은 살을 칼로 발라내는, 그래서 뼈에 살이 남아있지 않게 하는 작업을 뜻하는 단어다. ‘결(抉)’도 비슷하다. 뼈에서 살을 후비고 도려내는 작업을 말하는 한자어다. 그러니 우리가 늘상 입에 담고 살았던, 특히 5공 때 많이 썼던 ‘사회 부조리 척결’이라는 구호가 얼마나 무서운 것이었는지 알 수 있으리라.

    이런 격한 단어들은 대체로 군사용어나 무언가 대대적인 사회운동, 변화를 요구하는 일을 할 때, 또 대상자들을 겁박할 때 쓰이는 것 같다. 문제는 꼭 필요한 곳에, 필요한 일을 할 때 쓰는 단어이고, 또 그것이 효과를 나타낸다면 좋으련만 대개는 겁이나 주고 결과는 허망한 구호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도 없는데 말로만 과장하고 허장성세하는 데 많이 동원된다는 이야기다. 박정희, 전두환 시절 우리 사회의 거친 용어들을 떠올리면 쉽게 알 수 있으리라.

    광주에서 또 다시 대형 안전사고가 나서 인명피해가 크고 사고를 일으킨 주역들은 사회적으로 많은 물의를 낳고 있다. 잇따른 안전사고에 시 행정당국이 ‘부실공사를 척결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공무원들이 무서운 단어 ‘척결’을 내세우며 핏대를 올리고 있는데, 정작 부실공사가 과연 없어질 것인지는 회의적이다. 우리가 이런 단어를 한 두 번 들어봤나? 그 동안 그렇게 ‘척결’을 외쳤으면 지금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말만 너무 거창하게 떠들고, 너무도 크고 무거운 단어를 갖다 붙여 떠든 통에 우리 사회는 ‘양치기 소년’같이 변해버린 지 오래다.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이 곪고 곪았는데, 이번에도 또다시 ‘척결하겠다’니 믿음이 안가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부실공사, 안전을 도외시한 공사만큼은 이번에 진짜로 ‘척결’했으면 좋겠다. 언제까지 이렇게 무섭고 살 떨리는 사고를 보며 가슴 졸이며 살아야겠는가? 부디 당국이나 건설사들 모두 분발하여 더 이상 헛구호로 허망함을 느끼지 않게 안전불감증을 척결해주면 좋겠다. 제발 부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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