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여

이달의 칼럼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이달의 칼럼 8월호] 

    '일신방직'과 광주의 역사문화 감성

    김옥렬_다큐디자인, 광주전남 민언련 대표


     

    전주 갈 때마다 드는 생각. ‘규모는 광주보다 작지만 역사를 지켜가고 재해석해내는 실력이나 문화적 감성이 우리 광주보다 낫구나’. 인정하건대 지난 역사도 뭐 전주가 광주보다 훨씬 오래고 그 흔적도 대단하다. 근대 이후야 광주의 역할과 규모가 훨씬 커졌으니 어느 면에선 낫다 생각이 들긴 하지만,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외형이 아니라 마음이고 정신이다.
     

    전주시내를 걸어보면 참 멋진 게 있다. 그 건물이 조금이라도 오래되었거나 어떤 사연이 있는 곳이라면 모두 앞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재질은 동판(또는 철판)으로 기억되는 데 우악스럽지 않고 아담하다. 검은 색에 짤막한 사연들이 적혀 있다. ‘이 건물은 어떠 어떠한 사연이 있는 건물이다.’ 이런 식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건물이 매우 오래되어 역사적 가치가 높거나, 아니면 크고 작은 문화재로 지정되었거나 한 것만 안내판이 세워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워낙 유명해서 다 아는 어느 콩나물해장국 집 식당 앞에도 그 내력이 적혀있을 정도다. 곧 전주 사람들의 삶과 문화가 배어있는 건물이면 종류·크기·권위 상관없이 작은 사연들을 곱게 적어 그곳을 찾는 이들에게 알린다는 점이다. 몹시도 아름답고 감동적인 마음이자 정성으로 읽었다.
     

    주변에 한번 살펴보시라. 그 유명한 왕자관 앞에, 광주사람이라면 모두 한 번 쯤 가봤을 왕자관이 언제 어떻게 되어버렸는지 기록 한 줄 있는지. 행적에 공과야 있다지만 대한민국 현대건축의 선구자에 속하는 김수근이 설계한, 그래서 건축사적으로 소중한 공간인 지금의 문화재단 별관(시민들은 옛 수궁갈비로 더 많이 기억할 것이다)엔 ‘김수근, 도체육회, 수궁갈비’ 이야기가 단 한 줄이라도 있는지. 수십만 수백만이 드나들며 사랑과 추억을 만들고 문화적 감성을 키웠을 태평극장·계림극장·아카데미극장·한미극장·현대극장 등의 터엔, 남아있는 광주극장 건물 앞엔 과연 그곳이 유명 영화관이었다는 팻말 하나 있는지. 아시아극장은 바로 엊그제 허리가 잘리고 마침내 피를 토하고 쓰러져버렸다는 것을 알리는 비명이라도 하나 있는지. 아파트공사장으로 변한 중흥동 점집동네나 월산동 MBC건너 수박등 일대는 어떤 사람들이 무슨 꿈을 꾸고 살았는지 푯말 하나라도 세워졌는지…
     

    그것이 광주, 문화수도라고 뻥치는 광주의 문화적 감성이고 실력 아닐까? 그 정도이니 도청을 일반 시민들은 허무는지 어쩐지도 모르게 무엇인가 만들었다가, 또 누가 왜 허물었냐고 큰소리치니 다시 복원한다고 아우성치는 도시의 역량이자 수준 아닐까? 슬픈 생각이 문득 든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다시 든 건 일신방직과 전방 건물이 민간 건설업자에게 팔렸다는 보도 이후 보인 광주의 호들갑 때문이다. 무슨 난리가 난 듯, 엄청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듯, 말 그대로 호들갑스럽다. 마치 평소 엄청난 문화감성을 갖고 그런 걸 잘 보존하고 역사적 해석을 곁들여 의미 부여해 활용한 도시였다는 듯 시장부터 언론까지 저마다 한 마디씩 한다. 그러나 위에서 단편적인 예를 몇 들었듯이, 내가 보기에 광주는 그런 도시가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좋게 생각해서 시민들이 나서서 목소리 높여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모르겠다. 잘 되면 좋겠지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왜냐면 지난 역사를 소중히 하고, 시민들의 체취가 담긴 건축물을 아끼고 보존하고 잘 활용하려는 의지와 실력과 혜안이 광주엔 희박하기 때문이다. 허물기 직전 겨우 살아난 전일빌딩과 기독병원 건물 사태가 최근에 보여준 극명한 예이고 일신방직·전방은 급하게 터져버린 한 예일 뿐이다.
     

    걱정이다. 이런 정도의 감성과 실력이라면 우리 산업역군 누님들의 슬픈 사연 가득한 발산마을 달동네, 윤상원 열사와 들불야학의 꿈이 흐르는 광천동과 시민아파트 역시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말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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