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여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광주청년 강수훈 (주)스토리박스대표가 향토기업 보해를 지키자며 SNS를 통해 ‘위드(with)보해’운동을 펼치고 있고 호응도 좀 괜찮은 것 같다. 언젠가 모임자리에서 “보해 경영난이 심상치 않은 것 같더라”는 이야기를 했더니 그걸 곧장 돕기 운동으로 이어가는 강 대표의 순발력과 선한 마음이 멋진 결과를 내는 듯 하다. 난 어려움에 처한 지역기업을 돕자는 데 이견은 없다. 다만, 고향민들의 무한사랑을 먹고 자란 그들이 과연 그동안 지역을 위해 무엇을 했고, 궁지에 몰려서 저런 애틋한 사랑을 다시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한번 묻고 싶은 마음이다.
3년 전 대전을 갔을 때다. 계족산에 들렀다가 황톳길을 맨발로 걷고 시민대상 무료 숲속음악회를 봤다. 음악회는 수준이 높았고 관람하는 시민들도 많았으며 호응도 좋았다. 성악가들이 주축이 된 공연팀은 맥키스컴퍼니라는 지역 소주제조회사가 수억 원을 후원해 매주말 행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궁금증이 일어 현장에 나온 맥키스컴퍼니 조웅래 회장을 만나 몇 가지 묻고 많이 놀랐다. 맥키스컴퍼니라는 회사는 전라도 보해처럼 충청도에서 과거 ‘선양소주’라는 브랜드로 소주를 생산하던 회사다. 선양을 인수해 회사이름을 바꾸고 지금은 ‘이제 우린’이라는 브랜드의 소주를 팔고 있다.
맥키스컴퍼니는 계족산에 10km가 넘는 황톳길을 만들고 매년 이를 유지 보수하는 것까지 100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하고 있단다. 계족산을 전국에 알리기 위해 맨발 마라톤행사도 매년하고, 황톳길 유지를 위해 매년 5천여 t의 황토로 보수공사도 한다. 최근엔 대전과 아산에 이어 당진에도 이런 황톳길을 만들고 있다. 매년 거액의 장학금을 지역에 내놓는 것은 작은 일에 불과하다. 이 일을 지휘하는 조웅래 회장은 놀랍게도 충청출신도 아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서 나는 보해를 생각했다. 이미 그때 보해는 전국구 소주업체의 공략으로 위기로 내몰렸고, 돈 얼마 들지도 않는 매실농장 개방행사조차 경영난으로 힘들어한다던 소문이 돌 무렵이어서 내 관심은 더욱 컸다. 아무리 되뇌어도 100여 년에 육박하는 역사에 호남인의 무한애정으로 오늘에 이르는 동안, 보해가 지역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장학금 좀 주고, 지역 청년들 모아 무언가 후원한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지만 대전에서 들은 이야기에 견줘보니 ‘쨉이’가 안되어 보였다.
최근엔 금호도 어렵단다. 생각해보면 광주에 내려올 때 중앙고속이 텅텅 비어 있고, 그쪽 승무원들이 울며 애원해도 광주고속만을 타던 호남인들의 애정으로 일군 기업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니 안타깝기는 하다. 하지만 그들 또한 그렇게 성장해 가는 동안 과연 지역을, 그리고 지역민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기업을 운영해야 하는 기업인들에게 창업주의 고향이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그리고 엄청난 무엇을 강요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지역대표기업을 자처하며 지역민 사랑을 자양분삼아 승승장구했고, 향토기업임을 내세우던 그들이라면 건강할 때 지역을 위한, 또 지역민을 위한 건강한 후원사업에 신경을 썼어야 한다는 뜻이다. 지역민의 눈물을 먹고 자란 만큼 경영을 잘해 은혜에 보답해야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보답은커녕 지금 이들 기업은 왜 이렇게 잘 나가던 기업을 망쳐버렸는지,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사과의 말씀조차 없다. 그러니 식당에서 보해를 거부하는 호남인들이 늘어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
이도 저도 아무것도 못한 기업이 어려움에 처하자 또 지역민의 사랑에 연명을 기대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그들은 지역민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기 이전에, 그런 무한사랑을 먹고도 기업을 이 모양으로 망친 데 대한 진솔한 이해부터 구하고, 한 번 더 도와주면 향토기업을 살려보겠다는 의지표현을 내놓고 도움을 요청하는 게 먼저가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보해를 많이 마셨고 지역기업의 성공을 바라는 나도 보해의 회생을 응원하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다. 많은 호남인들은 여전히 “보해주세요”를 외치겠지만 혁명적 사고전환이 없는 한 보해가 난국을 버텨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