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여
서울 제국과 지역의 불행
김옥열 다큐디자인 대표
“설탕 공장에서 일하다 잘못해 맷돌에 손가락이 딸려 들어가면 손을 자르고, 도망을 치다 잡히면 다리를 자르지요. 저는 그 두 가지를 다 겪었습죠. 당신네 유럽인들이 설탕을 먹는 건 바로 그 덕입죠. 개나 원숭이나 닭도 우리 처지보다는 훨씬 나아요."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이자 극작가가 볼테르(Francois-Marie Arouet Voltaire, 1694~1778)가 1759년 발표한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Candide ou l’Optimisme)』라는 책에 나오는 유명한 에피소드다. 캉디드라는 주인공이 네덜란드의 식민지 수리남에서 만난 설탕 노동자에게 왜 손과 발이 잘려나갔는지를 묻자 노예가 한 대답이었다.
유럽의 식민지배가 정점에 이르렀던 19세기에 서구 제국주의국가들이 가난한 국가들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그들의 인력과 자원을 무자비하게 착취하고 뺏어가서 부를 이루고, 소위 민주주의와 인권을 완성시켜갔음을 우화적으로 비판하는 대목이다. 프랑스혁명에 참가한 혁명가들조차 저렇게 생산한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인권을 이야기했단다. 왜 죄없는 흑인은 아무 상관도 없는 이들을 위해 손발이 잘리며 고통속에 살아가게 되었는가?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왜 죄없는 지역이 불행하고 고통받는가하는 문제가 떠올라서다. 대체 우리나라의 ‘지역’은 그리고 ‘지역민’은 왜 죄도 없이 이렇게 불행하고 고통받아야 하는가?
여당이 느닷없이 경기도 김포를 서울특별시에 포함시켜주겠다고 ‘작전’을 밀어붙이고 있어 그런 질문이 떠올랐다. 참으로 복장 터지고 미칠 것 같은 이야기를 버젓이 지껄이고 있다. 지금도 인구 1천만에 가까운(실제 940만) ‘메가시티 서울’을 더 메가하게 만들겠다는 이런 한심한 발상을 왜 국민들이, 지역민들이 들어주고 감내해야 하는가. 역대 정부가 다 추진했고, 시대적 과제인 지역균형발전전략을 하루 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바꿔가며 서울의 주변 도시를 서울로 포함시켜 서울 메가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인지, 그 꼼수의 배경은 읽힌다. 그러나 아무리 선거가 급해도 그리해야할 일인가?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수도를 이렇게 키워가는 나라는 없다. 어쩔 수 없이 커져버렸거나 지금도 커지고 있는 통제불능 개발 국가들이나 인구과밀국은 놔두고 한번 보자. 서울 인구는 나라 전체 인구의 18.2%나 된다. 경기 등 수도권 인구를 다 합치면 2천600만, 전체 인구의 절반이 몰려 산다. 서울보다 인구가 많은 1천257만의 도쿄도 전체 인구의 10.2%밖에 안 된다. 전체 인구의 3.4%인 파리, 5.4%인 베를린 등 잘 사는 나라들은 수도나 제1도시를 마구 키우지 않는다. 왜? 도시의 비대화는 환경 교통 에너지 등 모든 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다른 지역과의 갈등으로 큰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하기 때문이다. 그런 나라들에선 오히려 수도권 이외에 메가시티를 만들어 균형을 맞추려 한다.
알다시피 서울은 너무 크다. 성장과정에서도 지역의 피와 살을 뽑아다 갈아 마시며 부피를 키웠다. 그 과정에서 지역은 마치 위에서 캉디드가 만난 흑인 노예처럼 아무 죄 없이 가진 것 모두 내주고 고통받고 있다. 지역이 아예 소멸될 정도의 인구문제도 서울 때문이고, 청년이 씨가 말라가는 것도 서울 때문이며, 병원에 쇼핑까지 서울로 가야만 하는 지역 사람들의 불행 또한 서울 때문이다. 모든 길이 서울로만 통하는 것도 서울 때문이다. 군에 영화관 하나 없고 소아과 하나 없는 것도 사실 따지고보면 서울 때문이다. 서울은 마치 제국주의국가 같다. 지역의 피를 빨아 살쪄가는 서울제국, 지역의 단물만 빼 호위호식하는 서울제국, 모든 것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서울제국.
모든 국민이 알고 있는 사실을 눈가리고 아웅이다. 제발 정신차리고 ‘김포멘더링’을 포기하기 바란다. 정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요구해보자. 서울로 출퇴근하는 이들이 많아서 김포를 서울로 합치겠다면, 호남도 영남도 제주도 서울로 붙여달라고. 지역에 사는 사람들치고 서울에 친척 한두명 안 사는 사람 있나? 우리도 서울 가기 힘들다. 서울 자주 왔다갔다해야하니 혜택 좀 보게 서울특별시민 해달라고.
하는 발상이 참 기가 막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