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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칼럼


     

     

    희경루, 광주시민의 품격있는 문화공간 되길

     

     

    노성태 남도역사연구원장

     

     

     

    지난 9월 20일 광주공원에 조선시대 광주를 대표했던 건물, 희경루(喜慶樓)가 300여 년 만에 중건되었다. 광주공원 노상 주차장에서 광주향교로 넘어가는 왼쪽 도로의 초입이다.
     

    590여 년 전인 세종 12년(1430) 읍민 노흥준이 목사 신보안을 구타한 사건이 있었고, 이 사건 이후 광주목은 무진군으로 강등된다. 필문로의 주인공인 필문 이선제 등 지역 원로들의 노력으로 강등 21년 만인 문종 원년(1451), 광주는 다시 광주목으로 복권된다. 당시 광주인들은 광주목으로의 복권을 축하하기 위해 옛 무등극장 일대에 짓고 있던 루(樓)의 이름을 “기쁘고 경사스럽다”는 의미를 담은 ‘희경루라 붙였다.
     

    당시 광주목으로의 복권을 광주인들이 얼마나 기뻐했는지는 1451년 신숙주와 1536년 심언경이 각각 「희경루기」에서 “고을의 원로들이 모두 모여 경축했다(父老咸集致慶)”, “고을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고 서로 경축했다(邑人咸喜相慶)”는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이후 희경루는 광주인들의 자랑이 되었다.
     

    광주목으로의 환원을 경축했던 고을 원님의 연회 장소 옛 희경루는 지금 사라지고 없다. 관련 기록들을 살펴보면 1533년 화재로 불탄 후 재건 및 중수가 이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제반 기록을 종합해보면 17세기까지는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300여 년 이상 사라진 채로 이름만 남았지만, 광주인들은 늘 희경루를 가슴에 품고 살았다. 오늘, 위치는 달라졌지만 2018년 전라도 정도 천년을 기리는 사업으로 중건하는 희경루에 광주 시민들의 관심이 뜨거운 이유다.
     

    그런데 희경루 중건에 가슴 설레는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중건지가 “원래 위치가 아니다”라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지만, 루(樓)가 갖는 휴식공간의 성격에 맞게 무등산을 바라보는 방향이어야 하는데, 중건된 희경루는 광주천과 일직선을 이루면서 무등산과는 사선 방향으로 준공되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희경루가 들어선 곳은 옛 신광교회 자리였다. 신광교회는 1970~80년대 광주 민주화운동가들이 비밀리에 모여 광주 정신인 시대정신을 모의하고 실천한 상징 장소일 뿐 아니라 5·18민주항쟁 당시 도청에서 순국한 유동운 열사가 청년 시절까지 살았던 곳으로, 그를 기리는 추모비가 서 있는 현장이다. 그리고 바로 옆은 근대 광주교육이 시작된 전라남도관찰부공립소학교가 들어선 향교의 부속 건물 사마재(司馬齋)가 있었다. 광주는 교육도시며 민주화운동의 중심지이다. 희경루가 들어서면서 사마재 건물도, 유동운 열사 추모비도 희경루와 조화를 이루도록 재 건립되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계획이 아직 보이질 않기 때문이다.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중건되었지만, 향후에는 멋지게 활용되어야 한다. 조선시대에는 양반들의 놀이공간이었다면, 이젠 시민들의 놀이공간 즉 품격 높은 문화공간이어야 한다. 광주 공원은 심남일 의병장 순절비, 4·19기념탑, 5·18표석이 세워진 광주의 정체성이 진하게 묻어 있는 공간이다. 문화해설사가 배치되는 등 철저한 관리는 물론이고, 향후 광주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화콘텐츠 및 교육 공간으로도 활용되어야 한다. 그런 시설까지 갖춰져야 한다.
     

    희경루의 중건으로 기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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