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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칼럼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이달의 칼럼 5월호] 

     

    진달래 산천

     

    백수인(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고문, 조선대 명예교수)

     

      봄이 오면 온 산천이 진달래꽃으로 뒤덮인다. 진달래꽃은 한반도의 북단에서 최남단인 제주도까지 피지 않은 산이 없을 정도다. 진달래꽃은 우리들에게 아주 친근한 봄꽃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친근한 꽃이기 때문에 고전시가에서부터 현대시에 이르기까지 진달래를 노래한 작품들이 많다.

     

      신라의 향가 <헌화가>에 나오는 벼랑에 핀 꽃이 ‘진달래꽃’이라고 보는 이도 있지만, 원문에는 그냥 ‘꽃’(花)으로만 나와 있기 때문에 그건 어디까지나 짐작에 불과하다. 그러나 고려속요 <동동>의 ‘3월령’ “三月 나며 開 / 아으 滿春 욋고지여 / 미 브롤 즈 / 디녀 나샷다 // 아으 動動다리”에 나오는 “욋고지”는 진달래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욋고지”는 현대어로 풀이하면 “달래꽃”이다. 진달래는 ‘달래’에 접두어 ‘참’을 붙여 ‘참달래’라고 하였으며, 참을 의미하는 한자 ‘진(眞)’으로 바꾸어 ‘진달래’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방에 따라서는 ‘진달래’는 ‘참꽃’, ‘철쭉’은 ‘개꽃’ 혹은 ‘개달래’라고 부르기도 한다. 진달래(참꽃)는 독성이 없어서 예로부터 화전을 부쳐 먹기도 하고 술(두견주)을 담가 먹기도 한다. 그렇지만 철쭉(개꽃, 개달래)은 독성이 있어 먹을 수 없다. 이런 정황으로 보면 <동동>의 “욋고지”는 ‘참달래’(진달래)와 ‘개달래’(철쭉)의 통칭으로 보아야 한다.

     

      이 진달래는 한자어로는 ‘두견화(杜鵑花)’라고 한다. 이 ‘두견화’는 본래 중국에서 온 말이지만 우리말로 씌어 왔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한시나 가사 작품에는 ‘두견화’가 많이 나온다.

     

      이수광의 오언율시 <길 가다가 활짝 핀 두견화를 보네>(路中見杜鵑花滿開)에서 “간밤에 두견새 울어대더니(昨夜杜鵑啼) / 오늘 아침 두견화가 활짝 피었네(今朝杜鵑發)”라는 구절을 보면 두견새의 울음과 두견화의 개화를 ‘인과관계’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백거이(白居易)의 〈산석류, 원구에게 붙인다(山石榴, 寄元九)〉라는 시에 "두견이 한 번 울 때마다 두견화는 한 가지씩 핀다(一聲催得一枝開)"는 구절과 같은 맥락이다. 이는 ’두견화‘의 어원에 얽힌 설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

     

      두우(杜宇)라는 중국 촉(蜀)나라의 임금 망제(望帝)는 위(魏)나라에 망한 후 도망하여 살면서 복위를 꿈꾸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한을 품고 죽었다. 그 넋이 두견새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한 맺힌 두견새는 밤낮으로 ’귀촉(歸蜀) 귀촉‘(촉나라로 돌아가고 싶다)하며 슬피운다고 한다. 그래서 귀촉도(歸蜀道)라고도 불렀다. 죽은 망제의 혼이 깃든 두견새는 피를 토하며 울고 토한 피를 다시 삼켜 목을 적신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 한 서린 피가 땅에 떨어져 붉은 꽃 두견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두견화가 우리말로는 ’진달래‘다.

     

      현대에 와서 진달래꽃은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을 비롯한 수많은 시와 노래에 등장한다. ’고향의 봄‘, ’바우고개‘, ’망향‘, ’봄이오면‘ 등 이루 셀 수 없이 많다. ’한‘을 상징하던 진달래는 현대로 오면서 민족의 정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 등 그 상징적 의미가 다양하게 확산하였다. “사월학생혁명기념탑”에는 “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 속에 그들의 피묻은 혼의 하소연이 들릴것이요 해마다 4월이 오면 봄을 선구하는 진달래처럼 민족의 꽃들은 사람들의 가슴마다 되살아 피어나리라.”라고 썼다, 여기서 ’진달래‘는 민주사회를 위해 투쟁하다 산화한 학생들의 영혼을 상징하는 꽃이 된다.

     

      시인 신동엽은 <진달래 산천>이라는 시를 통해 “투철한 역사 의식에 입각하여 6 · 25로 인한 깊은 상처를 진달래의 핏빛 이미지 속에서 그려내기도 했다.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진달래와 유사한 꽃은 철쭉이다. 이 이름은 중국어 척촉(躑躅)에서 유래하였다. 전래 당시에는 '텩툑'으로 읽었고, 이후 텩튝, 텰듁 등을 거쳐 현재의 철쭉으로 정착되었을 것으로 본다. 척촉(躑躅)은 '머뭇거릴 척', '비척거릴 촉'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것은 양이 이 꽃을 먹으면 죽기 때문에 보기만 해도 비틀거린다는 뜻이라고 한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선비들은 ’진달래‘를 ’두견화‘로 썼고 ’개달래‘를 ’척촉‘으로 썼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 중국 사람들은 ’두견화‘를 우리말인 ’진달래‘라고 부른다. ”金达莱(jīndálái)“가 그것인데, 우리말 ’진달래‘를 음차한 것이다. 봄이 되면 산천에 가득한 우리 민족의 꽃, 그 이름은 이제 중국에서도 ’진달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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