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림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해방 이후 광주 이야기’ 발간
항일독립운동 순국 열사 이야기
극장 문화·도심 역사성 등 조명
|
지역민들은 오늘의 ‘광주’가 있기까지 광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남도를 넘어 타 지역민들은 또 얼마나 광주에 대해 알고 있을까.
대부분 광주하면 5·18, 그리고 ‘광주정신’을 이야기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광주를 대표하는, 지역민들이 선택했던 의로운 정신을 빼놓을 수 없다.
광주가 전남의 도청 소재지가 된 것은 1896년이다. 당시 8개의 도를 13개로 나누면서 나주에서 광주로 소재지가 이전됐다. 그리고 오늘날 143만의 대도시로 성장했다.
|
사실 광주는 백제시대 이래 1500여 년 영산강 문화권의 중추도시였다. 인적, 물적, 역사적, 문화적 자원은 여느 고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하고 특색이 있다.
광주 역사 가운데 해방 이후는 전환기라 할 만큼 역동의 시간들이었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광주는 당대의 모순을 극복하면서 의향(義鄕), 문향(文鄕), 미향(味鄕)의 도시로 발돋움했다.
해방 이후 광주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발간돼 화제다.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이사장 노경수)이 펴낸 ‘해방 이후 광주 이야기’는 해방 이후 광주를 담고 있다.
노영기 조선대 교수를 비롯해 김원중 전 지역문화콘텐츠연구소 연구실장, 송재환 (주)바람아래 기획실장, 신주백 (전)한국독립운동사 연구소장, 위경혜 전남대 학술연구교수가 집필진으로 참여했다.
노영기 교수는 “근현대, 특히 해방 이후 광주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해진 답을 찾을 수는 없으나 적어도 해방 이후 광주에서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는 시도였다”며 “도시로서의 광주는 어느새 지역의 도시가 아닌 전 세계인에게 보통명사로 이해되는 곳이 되었다”고 전했다.
책은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기에 이르는 시간, 광주 역사를 담고 있는 귀중한 자료다. 특히 민족분단이라는 비극의 역사 속에서 광주가 걸어온 길, 독립유산 등을 상세히 수록했다.
1장 ‘해방 그리고 광주’에서는 항일독립운동 과정에서 희생당한 이들의 면면을 볼 수 있다. 이름 없는 의병, 일제 말기 무등회 사건으로 옥사한 학생들 독립을 위해 목숨을 내걸었던 이들의 기록이다. 저자들은 “해방은 그러한 수많은 선열들의 헌신적인 투쟁의 산물”이었다고 강조한다.
2장 ‘전남도청과 금남로·충장로’는 권력에 항거했던, 지배에 저항했던 금남로 일원을 다뤘다. 3·15 부정선거 항의 ‘장송시위’를 비롯해 4월 19일 광주시내 고등학생들의 대규모 시위, 5·16 쿠데타 이후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광주 학생들의 시위 등도 있다. 또한 80년 5월 18일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된 이후 학생과 시민들의 저항과 시위 등도 기술돼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기 광주를 중심으로 한 극장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자료도 있다. 3장 ‘극장의 장소성’은 일제강점기 근대 신문물의 도입, 일본 이주자 도래와 함께 문을 연 극장을 조명했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일제 지배 아래 광주극장의 규모는 문화적 저항의 의미”를 지녔다. 또한 일정 부분 일본 영화산업의 영향을 받았지만 “조선인 정서의 공감을 형성하고 공론을 집결하는 장소”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4장 ‘광주 신도심의 역사성과 장소성’은 상무대와 상무지구의 탄생에 초점을 맞췄다. 책에는 식민시기 광주비행장, 해방 후 미군 관할 당시가 기록돼 있다.
또한 50년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사용했던 광주비행장, 1952년 미군 지휘 아래 설치된 상무대도 만난다. 마지막으로 1995년 장성군 사창면으로 상무대가 이전할 때까지 광주와 상무대의 관계도 대략적으로 담고 있다.
한편 14일에는 대구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에 책을 기증하는 기증식이 마련됐다. 독립운동 정신 뿌리를 조명하고 지역사회 역사적 가치를 확산하기 위해 기획됐다.
기증식에는 노경수 이사장을 비롯해 노성태 재단 연구소장, 재단 관계자, 대구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기사 바로가기 http://www.kwangju.co.kr/article.php?aid=1736938920778955026